2025.03
























그룹전
《Draw on page 3rd》
Plli
2025.03.25-03.31




Group Exhibition
《Draw on page 3rd​​​​​​​》

기획의도

김종혁
(기획자,작가,컬렉터)


    우리에게 잊혀진 책들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책을 바라보는 관점은 때로 너무 한정적이라고 느낍니다. 본 기획전은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헌책을 재해석하며, 책들이 새로운 예술적 숨결을 얻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자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책을 해체하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며 한 장 한 장을 새롭게 탈바꿈시킵니다. 단순히 시각적 결과물을 넘어, 책과 작가, 그리고 관객 간의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냅니다. 각 작가가 선택한 책의 페이지들은 에스키스(밑그림)와도 같고, 때로는 개인적인 일기의 조각처럼 보이며,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전시장에서는 이러한 페이지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나열됩니다. 이는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록된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관객은 이 작품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재생과 창조의 경계에서 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게 됩니다. 
    본 전시에 사용된 책들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닙니다. 이는 버려진 책들이 예술적 오브제로 변모하며 ,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입니다. 잊혀진 페이지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다시 살아나고, 관객과 만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 전시는 책이라는 물성을 넘어 창조적 과정과 가능성을 탐구하며, 우리가 주변의 사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그저 지나쳤던 책들이 어떻게 다시 주목받고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실험입니다. 



전시 서문

이효원
(전시/문화 기획자,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폼드비 아트디렉터)


    처음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 벽에 가득 붙어있는 종이 드로잉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는 화려하거나 특별한 기교 없이 소소한 느낌의 드로잉 전시처럼 보였다. 상주 중이던 전시 기획자에게 무심코 “드로잉 전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전시 서문을 아직 안 보셨군요, 읽으시면 다시 말씀해주세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때 이 전시에 뭔가 숨은 장치가 있구나 싶었다. 천천히. ‘Draw on page’의 이전 전시와 이번 전시의 서문을 읽고 나자, 전시장이 전혀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Draw on page’는 기획자의 사소한 경험과 생각에서 시작된 특별한 전시이다. 작가이자 기획자인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종이를 구매하려다 우연히 화방 옆에 있는 중고서점에 방문하게 되었다. 중고책의 가격이 종이 가격보다 저렴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중고책을 구매하여 그 위에 그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었다. 같은 종이임에도 불구하고, 책-게다가 누군가 읽고 소유하였을 중고책-은 텍스트와 기억이 뒤섞여 있는 독특한 매체이다. 작가는 거기에 개입만으로 새로운 시각 조형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 전시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참여하는 작가는 중고서점에서 직접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구매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구매한 영수증을 반드시 보관하는 것인데, 이 영수증이 작품의 캡션으로 사용된다. 
  둘째, 일정 규격 이상의 책으로 선택하고, 커버부터 맨 끝페이지까지 모두 작업을 해야 한다. 작가는 약 200페이지 분량의 드로잉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일기처럼 데일리 드로잉을 그리는 작가도 있고, 단기간에 떠오르는 영감을 쏟아내는 작가도 있어, 저마다 다른 작업 방식이 드러난다. 그렇게 작업된 드로잉은 한 페이지씩 나란히 전시공간을 채우게 된다. 순서대로 진열되기도 하고 페이지가 섞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중간에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기도 하기 때문인데, 연속되는 흐름속에 새로운 사건이 개입하여 또다른 충돌지점을 만들어 낸다. 무엇이든 예기치 못한 것이 더 흥미롭고 기억에 남는다.
    전시작을 제작하기 위한 새로운 자원을 작가가 드로잉에사용하는 재료들뿐이다. 드로잉이 그려질 종이와 작품을 소개하는 캡션을 책과 영수증으로 대체된다. 어느 장소에서 전시가 이루어지든 책 몇 권만 챙겨가면 된다는 기획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전시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방법은 미니멀하지만, 그 이야기는 맥시멀하여 곰곰히 사유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 서문

박소현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 널 위한 문화예술 구성작가)


    우리는 전시를 통해 작품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면서 과거의 작가를 떠올리게 되고, 나의 취향을 알게 되고, 함께 보는 사람과 생각을 나누게 된다. 펼쳐서(展) 보여준다(示)는 의미의 전시는 책과 닮은 구석이 있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과 기획자의 아이디어를 통해, 책은 작가의 글과 편집자의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전시는 관람객, 책은 독자를 통해 완성된다. 작가는 미래의 독자를 상상하며, 현재의 관람객과 독자는 과거의 작가를 엿보며 교차한다. 다르고 닮아서 이들을 모두 좋아하는 누군가는 이 둘의 만남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서로 다른 작품활동을 해왔던 작가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이 담긴 캔버스는 다름 아닌 책이다. 작가들은 중고서점에서 헌책을 골라 각자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책을 해체하며 재구성한다. 매 쪽 성실하게 한 권을 새롭게 완성한 작가들의 작품은 일기처럼 소소하고 담담하기도, 에스키스처럼 간단하고 자유롭기도 하다. 그림이 글의 삽화처럼 어울리게 배치되기도 하고, 붓질과 활자가 겹친 모습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기도 하다. 
    작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권으로 된 책이 장으로 북북 뜯어진다. 전시장에서는 이러한 낱장의 책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마치 달이 차고 기울어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된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한결 가벼운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다. 목격자인 우리는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재생과 창조의 경게에서 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게 된다. 어쩌면 다음 차례를 이어받아 책 속 활자와 여백을 넘나들며 능동적인 창작의 세계로 뛰어들고 싶어질 수도 있다.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전시는 이제 기획자의 손을 떠났다. 수많은 곳을 향하며 맞닥뜨릴 새로운 만남을 기대한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책을 펼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수많은 전시가 반짝 떠오르고 사라져가는 요즘 시간을 내어 공간에 방문한다는 것은 또 어떤가? 책이 쓰이고 읽히며 살렸을 수많은 삶을 생각한다. 먼 곳으로의 여행과 수많은 손길을 기대하며 세상에 나왔지만 반듯하게 남겨진 책의 외로움을 생각한다. 화려함 뒤편에 고군분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 작가와 기획자의 마음을 생각한다. 여기 모인 책과 이 전시에 영광과 주목의 시간을 고루 쥐여 주고 싶다. 




작가노트 


    이번 전시에서는 조말선 작가님의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를 바탕으로 작업했다. 책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오해들, 관계의 어긋남 그리고 상대를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과 호기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려는 시선에 매력을 느껴, 이 책으로 작업했다. 각 페이지에서는 인상적인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 문장에 어울리는 상황을 드로잉으로 담았다.








조말선 시집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Each 22.4x13cm (79ea)
Charcoal, conté and marker on printed paper
2025










그룹전
《Draw on page 3rd​​​​​​​》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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