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note





작가노트



2021
검은 점: 불안한 인간

    나를 포함한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남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혼자이고 싶어도 혼자는 살 수 없는 사회 안에서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한다.나와 또 다른 개인 그리고 공동체가 있는 삶의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고독을 검은 점에 담아낸다. 검은 점의 인간 형상은 우리를 대변한다.
    살기 위해 쓰는마스크와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만들어내는 수많은 얼굴들이 검은 점에 있다.화면 속 군상은 다양한 나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최소한의 공존이 필요한 현 상황을 보여주어,사회 구성원으로서 경험한  불안하고 고독한 감정을 검은 점의 몸짓에 드러낸다. 화면에 나타나는 검은 점의 획일화된 군상은 생물학적 성(sex)도 없고 정체성도 없다. 검은 점에 숨어버린 불분명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2022
Still Life

    우리는 군중 속에서 남들과의 평행을 유지한다. 나만의 일정한 기준선을 만들고, 그 선 안에서 행동한다. 정해진 생활공간 속에서 일상이 시작된다. 작가의 책상 위에는 커피 잔과 노트북, 연필 등 작업에 필요한 정물들이 놓여있다.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정물들은 가지런히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그 안에 똑같이 존재하는 자신은 가만히 놓여있는 정물과 같이 정적인 모습이다. 나는 얼굴 없는 ‘검은 점’의 정적인 몸짓을 통해 단조롭게 흘러가는 일상을 표현한다. 화면 속 인물들은 정해진 공간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2023
작고 모호한 것들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은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개인의 작은방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공유하는 길거리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서 공간은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점점 명확해진다. 관계를 통해 개인의 경험이 쌓임에 따라 모호하고 불확실했던 것들이 추상적이었던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바꾼다. 공간은 사람들의 행동, 감정, 생각의 장소로서 혼자 머무르거나 타인과 함께하는 곳이 된다. 관계를 위한 만남은 일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처음 누군가와 만날 때는 자신을 주인공으로서 주관적인 관점에서 관계를 맺는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자신은 작아지고, 그의 기준들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바뀐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익명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을 숨기고 군중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안과 함께 파편적인 것들이 생겨난다. 작가는 일상에서 맺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파생된 감정들을 마주한다. 고독함도, 외로움도, 쓸쓸함도 타인의 존재로 인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불안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걱정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그 감정은 지속적으로 일상에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말하자면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불안은 모든 감정의 시작점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익명의 인물들을 통해 각자가 경험했을법한 불안의 상황들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그가 정한 주인공은 한 장면의 중심이 되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든다. 드러나는 표정을 감춘 채 누군가의 얼굴이 되어 감정을 몸짓으로써 표현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그 자신을 투영하는 존재이기도, 질투하는 타인의 닮고자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건 작고 모호한 것들의 이야기다.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어디를 가든지 누군가를 마주한다. 그곳은 ‘어디나’이되 아무 곳도 아니며, 누군가는 ‘누구나’이되 아무도 아니다. 단지 공간이 있고, 누군가가 있을 뿐이다. 창문 하나, 의자 하나, 커피가 담긴 잔 하나, 다 태워버린 꽁초 하나. 공간 속 소품들은 모두 관계의 매개체가 되어 타인과의 이유 없는 접점을 가능하게 한다.     
    무언가를 손에 들고 어딘가에 기대어 대화를 이어가지만, 접점 없는 대화는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대변하기 위해 많은 걸 소진해버린다. 때로는 안정을 찾기 위해 다수가 되어 익명의 아무개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손과 그 위에 얹힌 머리, 책상 위에 납작 기대어 숙인 머리.” 반복되는 관계로 모든 것을 소진해버린 사람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움직이지 못한다. 임의의 공간 속 소품들과 함께 놓인 얼굴 없는 인물들은 이러한 모습을 대변한다. 그들은 혼자 의자에 앉아 있거나, 군중 틈에서 버티고 서있으며, 또 다른 공간에서 타인을 마주한다. 이는 근원을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놓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다.


2024
창문은 열리고, 밤은 깊었지만

“얼굴이라는 창문을 통한 인간관계에 의문을 갖지 않고 의존할 때와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자유를 순간 엿보았는지 모른다....얼굴을 잃은 덕분에 창문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바깥 세계를 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베 코보의 소설 『타인의 얼굴』(1964)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사고로 얼굴을 잃은 남자가 원래 자신의 얼굴을 갈망하고 그 대안으로 가면을 만들게 되는 이야기다. 남자는 얼굴이 없어진 자신을 비정상이라 생각한다. 얼굴의 유무가 정상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생각했지만, ‘그 범주에 있는 것이 정상인 것일까?’와 같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얼굴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감에 대한 문제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에 과도하게 소통하며, 그것을 게시하고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너의 기준은 나의 기준이 되어간다. 내가 알던 것은 ‘다르다’에서 ‘틀리다’가 돼버린다. 최근에 인터넷에 떠돌던 가짜 뉴스가 진짜가 되어가는 걸 보았다. 작은 프레임을 통해 현실을 마주한 시야는 좁아졌고, 갇힌 시야는 정상의 범주를 축소시켰다. 나만 모르고, 나만 다르다는 생각이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것 일까. 우리는 기준 없이 타인의 판단을 신뢰하고 그 의견을 최신 정보로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분명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름이 두려웠다.
    어쩌면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신념을 뒤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다. 이번 전시 《창문은 열리고, 밤은 깊었지만》은 얼굴을 숨기고 비판 없이 대다수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물론 동조하면서도 자신의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니 궁금증을 숨기고 서로의 페르소나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아베 코보는 소설에서 얼굴을 관계의 매개체가 되는 창문으로 비유한다. 얼굴 없는 남자는 없어진 얼굴을 문제로 인식하고 남들과 비슷한 모습을 한 가면을 만든다. 남자는 얼굴을 소통의 수단으로 원했지만, 얼굴을 보고 타인을 마주하는 순간이 와도 서로의 민낯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다수의 범주에 속하기위해 적은 정보를 믿고 타인에게 동조하며, 또 다른 얼굴을 만들 뿐이다. 요즘은 얼굴이 있어도 타인과 연결되는 통로가 막혀버린 것 같다. 핸드폰의 작은 불빛에 의지해 서로를 알아보려 해도 그것조차 쉽지 않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밤처럼 사회에서 진짜 얼굴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림자에 숨겨진 익명의 얼굴들만이 존재한다. 그러니 익명 뒤에 숨어 창문에 그려진 그림들만 바라볼 뿐이다. 오늘도 창문은 열리고, 밤은 깊어간다.


2026
(짧은 글)
  
    나는 이름과 역할로 구별되는 사회의 질서보다는, 그 규정이 흔들리고 모호해지는 순간의 불안한 상태에 주목한다. 타인과 시선을 마주하기보다 손짓, 몸짓, 시선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반응해 왔으며, 얼굴은 인물을 구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경험은 완결된 사건이기보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의 장면으로 남고, 이러한 장면들은 단편적으로 기록되고 축적되어 불완전한 서사를 이룬다.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한 장면들을 수집해 가상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관찰자의 시선에서 표현한다. 이 과정은 정지된 장면들이 연속되는 씬드로잉 형식으로 이어지며, 시간의 흐름과 간극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드러낸다.   


(긴 글)

    나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한 장면들을 수집해 가상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를 관찰자의 시선에서 회화와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맞추는 일이 어려운 나는 상대의 얼굴보다는 손짓, 몸짓, 말투 등의 비언어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에게 얼굴은 누군가를 구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내게 하나의 경험은 완결된 사건이기보다,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장면으로 인식된다. 지속적으로 수집한 장면들을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기록들이 축적되며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작업은 여러 장면들의 수집과 배열을 통해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처음 작업에서는 인물의 표정을 지우고, 성별과 정체성을 특정할 수 없는 얼굴 없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이는 감정을 얼굴에 고정시키기보다 인물의 행동과 주변 상황, 시선의 흐름과 인물 간의 거리를 통해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작업을 지속하며 감정은 얼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어떻게 어긋나는지,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인물의 눈과 코가 점차 등장하고 이는 시선의 방향과 긴장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작업은 임의로 설정한 가상의 상황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심인물을 설정하고, 주변 인물과 공간, 사물의 위치를 조정하며 장면의 흐름을 구성한다. 화면 속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이 드러나는 무대가 되며 빛과 그림자의 방향, 사물의 배치는 인물들의 불안한 감정을 가시화하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관심은 씬드로잉(Scene drawing)이라는 연속적 드로잉 형식이 되었다. 씬드로잉은 감정의 변화를 장면 단위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결국 나아갈 수 없었다(2024)>, <얼굴 없는 남자(2024)>, <이방인 A(2024)>, <어쨌거나 밤은 지나갈 것이다(2025)>로 이어지며 축적되어 왔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중첩되며, 인물 간 관계 속에서 감정이 흔들리고 쌓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밀도가 가장 높은 주요 장면은 회화로 확장하여 움직임이 멈춘 정지된 화면 속에서 불안을 극대화한다.
    씬드로잉 <어쨌거나 밤은 지나갈 것이다(2025)>는 늦은 밤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구멍 너머로 느껴지는 낯선 시선을 시작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닫힌 공간인 방과 어두운 밤이라는 시간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고립을 은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익명의 인물 B씨는 특정 개인이기보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존재다. 이 작업은 개인적인 감정의 기록을 넘어서 불안이 공간과 시간대를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질문한다. 
    작업에 앞서 영화와 책을 통해 떠오른 문장과 장면을 기록해왔다. 기록들은 하나의 장면으로 축적되어 시퀀스를 이루며, 명확한 사건보다 불안과 긴장이 서서히 쌓이는 상태에 주목한다. 인물들은 주로 닫힌 공간이나 밤이라는 시간 속에 놓이며,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불확실한 순간을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다.
    장소적•시간적 배경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고립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각각의 장면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보다, 관객이 자신의 경험을 겹쳐 읽을 수 있는 여백으로 남는다. 앞으로도 다양한 공간과 환경 속에서 장면과 서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관계의 시작과 끝이 아닌, 그 사이에서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고 침묵과 부재로 기울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공적인 타인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을 분리된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다 서로에게 끝내 닿지 못한 말과 소통되지 못한 시간이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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